2025 제주블루스: 바다 색 아카이빙 프로젝트
5월 | 사계리 용머리해안 Yongmeori Coast in Sagye-ri
어느새 봄이 무르익고, 바다의 색도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5월의 주제는 제주의 남서쪽 산방산 자락 아래 펼쳐진 용머리해안입니다.
용머리해안은 약 25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퇴적암과
응회암이 층층이 쌓인 곳이에요. 이름처럼 머리를 바다로 늘어뜨린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시간이 쌓이고,
바람과 파도에 깎이며 생긴 지층은 마치 오래된 책장을 넘기듯
켜켜이 결을 드러냅니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 위로 바닷물이 얇게 번지며
아른거리는 빛을 보여줍니다. 용머리해안은 멀리서 보면 짙고
무거운 푸름을 띠지만, 가까이서 마주하면 뜻밖에 투명하고 오묘한
빛을 품고 있어요. 거친 듯 부드러운 이 풍경은 단지 ‘색’이라기보다 시간과 결, 기억으로 이루어진 감촉에 가까웠습니다.
용머리 지층 위에는 조선 시대 해녀들이 머물렀던 집터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남긴 흔적이,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조선을 처음 기록한 네덜란드인 하멜의 발자취도 남아
있습니다. 1653년, 폭풍을 만나 표류한 하멜 일행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이 해안이라 전해지지요. 그로부터 시작된 하멜의 조선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제주와 세계를 잇는 작지만 중요한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햇살 가득한 오후, 바위 틈을 따라 걷다 보면 넘실대는 바다와 쌓인 시간들이 나란히 발 아래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묵직한 먹빛, 잔잔하게 일렁이는 신비로운 청록 그리고
오후 햇살이 스며든 모래빛의 미묘한 따뜻함까지.
다층의 시간과 색이 쌓여 만든 용머리해안처럼,
당신의 하루도 단단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랍니다.